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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지 못한 자들과의 대화 : 정유정 작가의 소설 <28> 분석하기

by 사소한 졍 2023.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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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F는 주로 합리적으로 그리는 대안적인 가능 세계와 미래에 기반해있다. 이 장르는 그런 면에서 판타지와 비슷하면서도 다른데, 이야기의 맥락내에서, SF의 상상적 요소는 과학적으로 정립됐거나 과학적으로 가정된 물리 법칙으로 대부분이 가능해진다. SF의 배경은 종종 합의된 현실과 반대이지만, 대부분의 SF는 다양한 가상의 요소로 가능성 있는 과학적 가설이나 해결책을 제시함으로써 독자의 마음에 촉진된 상당한 정도의 불신의 유예에 의존하고 있다. SF는 많은 하위 장르와 주제를 가지고 있는데, 정유정 작가의 <28>은 그 중에서도 아포칼립스, 포스트-아포칼립스물의 전염병(최후의 인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섬세한 심리묘사와 위트있는 문체의 장인 '정유정 작가'

 작가 정유정은 전라남도 함평군에서 태어나 기독 간호 대학교를 졸업하고, 간호사로 일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사직으로 근무했다.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로 5천만 원 고료 2007년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고 '내 심장을 쏴라'로 1억 원 고료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을 받았다. 수상 이후 일체의 작품 발표 없이 장편소설 '7년의 밤' 집필에만 몰두하여 2011년 출간하였다. 그 외, 저서로는 '열한 살 정은이' 등이 있다. 2010년 겨울에 발생한 구제역, 정부의 무능함과 늦장 대응으로 수백만 마리의 소와 돼지가 살처분됐다. 살처분도 법으로 제시된 절차에 따라 고통을 최소화해서 진행돼야 하지만 정부는 ‘생매장’ 이라는 방법을 들고 일어섰다. 가축들은 어미든 새끼든 가리지 않고 흙구덩이로 던져졌고, 흙으로 덮여지기도 전에 서로에게 압사당했다. 구덩이 속에서 두려움과 고통에 울부짖는 가축들의 모습은 가축을 기리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작가 정유정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작가는 ‘인간’ 이라는 존재에 결국 희망을 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집필을 시작하여 바이러스라는 소재로 <28>이 탄생한다.

 

 

소설 <28> 소개 및 줄거리 분석

 정유정 작가의 소설 <28>의 ‘재난’은 본래 재난 소설처럼 ‘리얼리티’만을 내비치는 것이 아니라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전개되고 있다. 단순히 ‘재난’의 고통에 중점을 두기 보다는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을 중점으로 ‘인수공통전염병’이라는 대재앙을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5명의 인물과 1마리 개의 시점으로 이루어져있는 <28>은 불볕이라는 뜻의 도시 ‘화양’에서 28일간 일어난 일을 담아낸 이야기이다.

 1장에서는 5명의 인물과 1마리의 개가 가진 각자의 배경에 대해 서술하며 ‘인수공통전염병’이 발병하기 전까지의 상황을 나타내고 있다. ‘개 번식업자’인 남자의 집에서 영문 없이 개들이 죽기 시작하고, 남자 역시 집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다. 응급실로 실려 간 남자의 눈은 피를 머금은 듯 빨갛게 변해있었고, 그와 접촉한 구급대원과 의사, 간호사를 시작으로 사람이든 개든 짧은 시간 안에 무차별 적으로 사망하기에 이르는 알 수 없는 일들이 발생한다. 이유도 치료법도 없는 ‘바이러스’인 ‘인수공통전염병’은 ‘검은 안개’가 뒤덮이듯 ‘화양’ 전체에 퍼지게 되고 결국, 정부는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까지 ‘바이러스’와 함께 도시 전체에 가두어버린다.

 유기동물보호소 드림랜드의 수의사인 ‘서재형’은 아이디타로드 개썰매 경주에 참가했던 최초의 한국인 썰매꾼이었지만 경기 도중, ‘빛의 상실’이라고도 불리는 화이트 아웃에 갇히게 된다. 절망하던 ‘서재형’ 앞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굶주린 늑대들이 나타나게 되고, 레이스를 완주하느라 체력이 고갈된 쉬차-서재형의 썰매 개 무리-들을 위협한다. ‘재형’은 쉬차들을 진정시키려 하지만 이 역시 실패하게 되고 그 순간, 살고 싶다는 작은 욕망으로 인해 쉬차와 자신을 잇고 있던 줄을 끊어버린다. 이는 쉬차와 ‘재형’의 인연을 끊어내는 직접적인 선이기도 했지만, 나중에 발병하게 되는 ‘인수공통전염병’ 앞에서 먼 훗날 ‘재형’이 자신의 쉬차들에 대한 죄의식을 풀어내게 되는 선이기도 했다.

 한진일보 기자인 ‘김윤주’는 익명의 누군가로부터 ‘서재형’이 쉬차들을 몰락시키고 유기된 개들을 돌보고 있는 것이 아닌 그저 단순한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게 된다. 이를 토대로 ‘김윤주’는 ‘서재형’에 대해 기사를 쓰게 되고 이는 ‘서재형’의 삶에 그늘을 드리운다. 이 제보는 ‘서재형’으로부터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던 ‘박동해’가 보낸 것이었다.

 ‘박동해’는 사람들의 총애를 받는 가정의 일원이었지만, 그는 ‘명문대학생’도 ‘프랑스 유학을 앞둔 발레’리노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저 ‘개새끼’로서 집 안에 남아 있었다. 이는 그에게 ‘애정결핍’이라는 어긋난 감정을 가져다주게 되는데, ‘서재형’은 ‘박동해’가 분노를 표출하게 되는 장소를 제공해주는 인물이 된다. ‘박동해’는 군대 선임의 개인 ‘백구’를 시작으로 자신의 분노를 유발시킨 사람들의 개를 죽이게 되는데, ‘박동해’의 이 어긋난 행동은 현실 속에서 인간과 동물이 느끼는 공감과 교류를 끊어내려는 작가의 간접적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 그리고 이는 ‘인수공통전염병’이 발병되기 시작했을 때, 개와 사람이 공통적으로 걸리는 ‘바이러스’ 임에도 불구하고 ‘개’들을 먼저 살처분 시키려하는 인간의 비도덕적 행동을 증폭시킨다. 이로써 개들은 애정 어린 시선을 버리고 야생적인 모습으로 인간에게서 등을 돌린다. 인간과 동물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시발점이기도 한 것이다.

 서술자이기도 한 ‘링고’는 ‘서재형’이 키우던 개들 중 한 마리로, ‘개장수’에게 잡혀 감금당하게 된다. 최초의 ‘바이러스’ 감염자이기도 한 ‘개장수’를 119 구급대원인 ‘한기준’이 구조하면서 ‘링고’는 탈출의 기회를 ‘화양’은 ‘검은 안개’에 뒤덮이게 된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정부는 ‘화양’을 ‘바이러스’와 함께 고립시킨다. ‘다른 도시’를 살리자는 이유에서였다. 작가는 이를 시작으로 인물과 독자 간의 연민과 공감을 모두 끊어낸다. 평화로울 때의 인간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지만 평화가 사라지는 순간,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린다. 무차별적으로 죽어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5명의 인물들은 도망치고 싶고 숨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재난과 맞선다. 간호사인 ‘노수진’이 그렇고, 야생 개에게 아내를 살해당한 ‘한기준’ 역시 그렇다. ‘서재형’ 역시 도망칠 수 있는 상황이 있었음에도 ‘화양’을 떠나지 않는다. 다른 존재를 살생하며 살아남은 삶은 가볍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끝까지 버티는 것이다.

 늑대의 날카로운 이빨보다 더, 날카로운 지옥 속에서. 하지만 이 지옥 속에서도 ‘희망’은 존재한다. ‘재형’과 ‘윤주’의 사랑이 그렇다. 이것은 작가가 냉정하고 혹독한 삶을 그려내면서도 ‘이해’라는 선택을 쥐어주게 되는 사건이기도 하다. 이로써 모든 인물들은 자신이 그려내야 하는 ‘진실’에 가까워진다. “살려주세요.” 누군가의 외침에 ‘거짓’을 보여주기보다, ‘외면’하기보다 ‘손길’을 내밀 수 있는 그 따뜻함에 말이다.

 극한 상황에서 우리는 많은 인간들을 마주한다. 타인의 이해와 공감을 짓누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박동해’와 먼지만도 못한 취급을 하며 ‘소수’의 희생을 요구하는 ‘다수’ 이와 반대로, 희생을 통해 ‘이해’를 배우는 ‘김윤주’와 ‘서재형’이나 많은 이들을 위로해주고 있는 ‘한기준’과 ‘노수진’ 작가는 각각의 인물들에게 현실적이면서도 낭만적이게 다가감으로써 독자에게 다방면적인 시선을 선사한다. 이는 책을 읽어내는 독자의 긴장을 놓치게 하지 않으려는 기술적인 방법도 있지만, ‘재난’에 있어 냉정하게 변하는 인물들의 감정을 세세하게 보여주기 위해서도 있다. 결과적으로 독자는 책을 덮어내며 생각한다. 이 지옥에서 느껴지는 건 살아남은 사람들의 기쁨이 아닌 많은 죽음을 겪고 살아 난 이들이 느끼는 생명의 무게라는 것을 말이다.

 

소설 <28> 감상 후, 좋았던 부분

-1 재형은 스승 누콘의 손에 구조됐다. 마야가 그를 찾아냈다. 그를 깨운 것도 마야였다. 눈 뜨고 가장 먼저 대면한 것 역시 마야의 다갈색 눈이었다. 반가워 어쩔 줄 몰라 하는 눈이었다. 무한한 신뢰와 애정이 담긴 눈이었다. 조심스레 물어오는 눈이었다. “대장 내 아이들을 어쨌어?”

 

- 이유: 모든 사건의 시작이 되기도 한 프롤로그. 삶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린 ‘재형’이 살아남았을 때, 모든 생명을 버리고 도망쳐온 자신에게 죄의식을 물어오는 장면이기도 한 이 부분은 모든 이야기가 끝났을 때, 살아있다는 것 이상의 무게를, 죽은 자들의 목소리를, 되새길 수 있었다.

 

-2 누군가 ‘살려고 애쓰고 있다’고 말해주었으면 했다. 누군가가 ‘잘하고 있다’ 해주면,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누군가가 윤주였으면, 싶었다. 그러면 위안이 될 것 같았다. 그는 노크를 하려고 손을 들어 올렸다가 바지 주머니에 쑤셔 담아버렸다. 발소리를 죽이고 계단을 내려갔다. 거실 장식장에 드라이진 한 병이 있었다. 화양이 봉쇄되던 날, 윤주가 가져온 것이었다. 북새통이 된 마트에서 쓸어 온 물건이라고 했다. 아쉬운 얼굴로 “라임 주스가 있었으면 챈들러식 김릿을 만들어 먹을 수 있을텐데.” 라고도 했다. 재형은 대꾸하지 않았다. 챈들러식 김릿이 뭐냐고 묻지도 않았다. “챈들러 얘기로는, 술이 사랑과 같다던데요, 첫 키스는 마법 같고, 두 번째는 친밀하고, 세 번째는 지겹다.” 윤주는 드라이진을 거실 장식장에 넣어두었다. “숙박비예요. 마법이 필요할 때 드세요.”

 

-이유: 절망의 상황 속에서 자신의 이기심을 이길 수 있는 것은 바로 타인과의 교류라고 생각한다. 이 교류 속에서 우리가 가장 크게 느낄 수 있는 감정인 ‘이해’와 ‘사랑’ 그 시작이기도 한 이 부분 을 어찌 좋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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